퇴촌 삼성리주택 134mm 라미네이트주택 - 1997년

정일품송 0 4,238


지난 1월 MBC건축박랍회 정일품송 전시장에서 정말 반가운 늘 보고싶은 건축주 부부를 만났다.
규모가 큰 통나무집이 전시되어 있어서 혹시나 하고 보니 정일품송 이였다.
안에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 속에서 반가운 목소리로 첫 마디가 강사장 살아있었구나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고맙고 반가운 건축주 분들이다. 이 집에는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정일품송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고 강사장은 지금쯤 무얼하고 있을까 많이도 걱정을 해 주셨지만
낙향하곤 찾아뵙지도 못했다.
경기도 광주 삼성리 선착장에 지은 통나무집에 수목원을 만들었는데 정일품 수목원이라고
명칭을 지으셨다고 전시장에서 말씀을 하셨다.
끔찍히도 정일품송과 우리가족을 너무도 걱정해 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나도 반가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잠시 잊어져간 옛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다.
어제 출장중에 차로 도로가 주차장일 정도여서 지나는 길에 인사나 드릴까 하고 7년만에
이곳에 왔으나 외출 중이여서 사진을 찍으면서 과거로 돌아가 본다.
이 집을 계약하고 몇 달 후에 IMF 터졌다.
이 순간부터 나와 정일품송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되었고 이렇게 기나긴 세월을 보낸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때도 회사연역과 이름만큼은 많이 알려진 회사였지만 감당하기 힘든일이 내앞에 현실로 와 있었다.
건축주는 걱정이 되어서 나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물었다.
남들은 환율을 조정해서 재계약을 하는데 난 이것까지는 내가 추가없이 감당해 보겠다고 했다.
사실 나와 정일품송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같은 것이였다.
건축주분은 해외생활도 많이 하셔서 나에게 많은 조언을 해 주셨고 나는 해외에서 협상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해서 이 건은 마무리 지을 수 있었지만 나와 정일품송의 미래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시간들이 였다.
우리가족들의 생활은 이루말 할 수 없었으며 갑자기 항로를 잃어버린 표류하는 배와 같았다.
건축주 부부는 늘 표류하는 나와 정일품송 우리가족을 한 없이 걱정을 하신다.
나도 위로받을 곳이 없으면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곤했다.
한번 항로를 잃어버린 배는 끝임없이 모험을 하게되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빠지는 늪으로 가게 된다.
업친데 덮친격으로 모험속에서 실패란 실패는 다보게 되고 부모님 두분이 모두 그해에 풍과 암으로

사경을 해메고 난 돌아볼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그 와중에 금전적인 것부터 인간적인 배신(?)까지 내가 겪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10여년 동안에

모든 것들을 경험한다.
이런 나의 생활들을 알고 있는 건축주 부부는 그래서 첫 마디가 강사장 살아 있었구나 하고 눈물을

글썽이고 나도 숨겨진 지나간 세월의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을 느낀다.
나도 지금까지 이렇게 오랜시간이 걸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세월이 이리도 빨리 갔다는

생각을 이집을 보면서 느낀다.
난 늘 걱정하는 것이 내 얼굴에 지나온 흔적이 남아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늘 투쟁하며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 이제는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래야 나도 주변에 늘 걱정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편한함을 줄 수있기를 바란다.
정일품송속에는 수많은 반가운 인연들이 많다. 늘 걱정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이제는 걱정이 아닌 편안함을 드리고 싶다.
고마운 마음이야 말로 형언할 수 없지만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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